“너도 자위 하잖아” 이런 엄마는 처음이야



‘엄마가 이래도 괜찮을까.’ 

엄마로 살다 보면 수없이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나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 자식을 위해 인내하고 희생하는 엄마. 세상에는 엄마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다. ENA 드라마 <남남>의 은미(전혜진)는 ‘무슨 엄마가 이래’라는 말을 숨 쉬듯이 듣는 엄마다. ‘일진 따까리’였던 은미는 고등학생 때 미혼모로 딸 진희(최수영)를 낳았다. 


<남남> 1화에서 경찰인 진희는 회사에서 좌천 통보를 받고 집에 돌아와 엄마인 은미가 거실에서 자위를 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엄마가 자위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는 진희의 말에 은미는 민망한 기색 하나 없이 당당하게 말한다. 

“왜 상상을 못해? 넌 자위 안 해? 너도 하잖아.” 

‘엄마가 이래도 되나’라는 자기 검열은 없다. 은미는 욕망을 감추지 않는 엄마다. ‘엄마는 남자 없으면 못 살아?’라는 말을 딸에게 들을 정도로 끊임없이 연애를 해왔고, 음식 메뉴를 고를 때도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딸이 원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앞세운다. 

은미는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딸 진희가 어깨가 아프다고 좀 만져달라고 하자 은미는 ‘집에 와서까지 남의 몸 만져야 하니?’라며 거부한다. “내가 남이야?”라고 서운해하는 진희에게 은미는 정색하며 되묻는다. 

“그럼? 내 몸뚱어리야?”  

은미의 말을 들으며 엄마와 딸이 투톱으로 나오는 드라마 제목이 왜 <남남>인지 알 수 있었다. 열 달 동안 한 몸이었지만 태어난 후에는 독립적 인격체로서 남남인 존재, 눈물겹게 애틋하다가 한없이 귀찮기도 한 존재. <남남>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엄마 캐릭터를 통해 모녀관계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신파’도 ‘헤비함’도 없이 

 

ENA 드라마 <남남> 관련 이미지. ⓒ ENA


 

 

ENA 드라마 <남남> 관련 이미지. ⓒ ENA


 

드라마 소개에서는 은미를 ‘철부지 엄마’라고 표현하지만 은미는 병원에서 매일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동시에 은미는 정의감 넘치는 시민이기도 하다. 스토킹 당하는 여성, 학대받는 노인과 아이를 구하기 위해 헤드락을 걸고 핏대를 높이며 맞선다. 이 과정에서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은미가 약자를 향한 폭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은미는 엄마가 없는 집에서 알코올 중독 아빠의 폭력을 홀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라는 지옥에서 은미를 구한 것은 친구 미정(김혜은)이다. 미정과 미정의 엄마는 은미와 진희를 가족처럼 돌봐준다.  

고등학생의 몸으로 임신을 하고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면서 은미에게는 말 못할 고충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싱글맘으로 살아온 은미의 삶을 신파로 풀어가지 않는다. 

<남남>에서 은미의 임신은 고등학생들의 ‘불장난’이 아니라 은미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그려진다. 미혼모 가족이 겪는 사회적 편견에도 은미는 상처받거나 눈물 흘리는 대신 치고받고 싸운다. 사람들이 딸 진희를 예쁘고 화려한 금붕어인 은미에게 딸려 있는 ‘금붕어 똥’에 비유하자 은미는 멱살을 잡고 욕을 한다. 은미는 자신과 아이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는 여자다. 

드라마에서 가장 신선했던 것은 은미의 첫사랑이자 진희의 생물학적 친부인 진홍(안재욱)과의 재회를 그리는 방식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은미와 연애한다는 사실을 부모님에게 들킨 진홍은 은미의 임신 사실을 모른 채 전학을 갔다. 은미 역시 굳이 진홍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29년 만에 진홍을 다시 만난 은미는 진홍을 원망하거나 보상을 요구하는 대신 첫사랑의 감정을 되살린다. 친구 미정은 진홍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화를 내지만 은미는 왜 진홍과 연애를 하면 안 되냐고 반문한다. 그만큼 은미는 자신의 현재 감정에 충실하다.

은미는 남자로서의 진홍과 진희의 친부로서의 진홍을 분리한다. 진희가 본인의 생물학적 딸인 것을 알고 신경 쓰는 진홍에게 은미는 분명하게 말한다. 오버하지 말라고, 진희는 내 딸이라고, 오빠랑 상관없다고. 

딸 진희 역시 쿨하기는 마찬가지다. 진희는 진홍에게 ‘엄마랑 썸 타는 남자 노릇만 잘해주세요’라면서 ‘저한테 신경 꺼주세요’라고 말한다. 빗이나 칫솔을 몰래 훔쳐서 친자 확인 검사를 하거나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친자식을 찾고 갑자기 절절한 부성애를 느끼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 식의 클리셰는 <남남>에 없다(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친딸의 존재를 깨닫고 부성애가 폭발했던 배우 박성훈이 이 드라마에서 너무나 말간 얼굴을 하고 등장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진희는 자기에게 진홍은 엄마의 다른 남자 친구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친구 태경이 ‘핏줄이잖아, 인륜이고 천륜’이라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진희는 더욱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어우, 그 말은 좀 헤비하다.” 

진희의 말이 맞다. 진홍은 정자를 제공한 것 이외에 진희의 삶에 어떤 식으로도 기여한 바가 없다. 진희를 키운 것은 은미 그리고 ‘남’인 미정과 미정의 엄마다. 딸 진희도 엄마인 은미를 키웠다. 진희는 엄마의 앞길을 막는 ‘금붕어 똥’이 되고 싶지 않아서 공부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모든 것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말한다. 경찰이 된 것도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은미와 진희가 가족이 될 수 있었던 건 핏줄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을 가족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륜과 천륜’이라는 말은 무겁지만 공허하다. <남남>은 케케묵은 가족 이데올로기를 유쾌하게 깨부순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엄마 

 

ENA 드라마 <남남> 관련 이미지. ⓒ ENA


 

‘질척거림 없음’은 <남남>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시크하고 무게감 있는 역할을 주로 해왔던 배우 전혜진은 신파 없는 싱글맘 서사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전혜진의 얼굴에는 아이와 어른의 모습이 공존한다. 

딸보다 더 철이 없는 것 같았던 은미 캐릭터가 빛나는 순간은 은미가 어른으로서 역할을 할 때다. 은미는 29년 전 자신처럼 임신을 한 여고생에게 밥을 차려주고 잠자리를 내어준다. 섣부른 충고나 조언은 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장난스럽게 겁을 줄 뿐이다.

어두운 밤, 방 안에서 홀로 소리 내어 우는 여고생의 울음소리를 은미는 문밖에서 가만히 들어준다. 옆에 있던 진희가 은미에게 ‘저렇게 무서운데 어떻게 날 낳을 생각을 했어’라고 묻자 은미는 답한다. 

“미친년, 별걸 다 물어.”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라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엄마 캐릭터가 반가웠다. 은미는 과거에 갇히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본인처럼 취약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품을 내어준다. 가족보다 나은 남이 되어준다. <남남>을 보고 있으면 ‘가족’과 ‘남’의 경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새로운 여성 서사, 가족 서사가 통한 걸까. 8화까지 방영된 <남남>은 지상파를 포함해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닐슨코리아 집계 9일 기준).








Source link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